공동체기록관
공동체기록관 소개
소소한마을전시회
마을공동체공간
마을공동체활동
금천사람들
마을여행

> 공동체기록관 > 금천사람들

금천사람들

2020휴먼스오브금천-김옥자 살구여성회 활동가 인터뷰

글쓴이 : 마을관리자 작성일 :20-12-09 11:57 조회 : 163회 댓글 : 0건

본문

0a7ba96fad0c6a0997d2692595ecc8ed_1607483144_6417.jpg
 

살구여성회에서 보낸 인생의 호시절

김옥자 선생님, 자신과 자녀의 따뜻한 심성 빚어낸 20

 

현재 살구여성회 사무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의 4층에 위치한다. 이곳은 살구여성회의 소중한 공간이지만, 나이가 지긋하거나 몸이 편치 않은 이들에게 4층의 계단이 버거울까 염려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기쁜 얼굴로 올라오는 김옥자 선생님을 뵙자 그런 걱정이 무색해졌다. 허리가 아파 치료하고 오는 길이라는 김옥자 선생님은 4층 계단을 오르며 해맑은 얼굴이다.

 

지인의 한 마디로 시작한 봉사활동

 

김옥자 선생님이 살구여성회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따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인지 참 궁금합니다.

 

20년 전쯤, 우리 딸이 중학교 3학년 때였어요. 딸이랑 같이 공부하던 아이들 엄마 중 한 명이 이 근처에 어르신들 밥 지어드리는 곳이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궁금해서 자세히 알아보니 살구여성회의 무료 급식소인 따뜻한 밥집이었어요. 그렇게 알게 돼 봉사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반찬 만들기 봉사를 했어요. 100명분 반찬을 만드는데 어르신들 좋아할 만한 호박볶음이나, 나물이나, 청포묵처럼 대단하진 않아도 우리가 평소에 즐겨 먹는 반찬을 주로 만들었죠. 제 딸도 와서 반찬 나르는 봉사에 참여했고요.

 

100명분 반찬이 결코 쉬운 게 아닌데 어렵다고 느끼진 않았나요?

 

평소 성당에 다니는데, 성당에서도 그런 봉사를 자주 하는 편이라 익숙했어요. 또 저만 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많이 도와줘서 할 만했지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했거든요. 그러다 금천구에 어려운 아이들 급식비 지원해주는 일도 하고, 방학 무렵이면 아이들과 그 부모를 한 번씩 초대해서 음식 대접하는 일도 했습니다.

 

일이 힘든 것보다는 자리를 만들어도 자신의 어려움이 드러날까 봐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이 컸어요. 한번은 급식비 지원받는 아이와 엄마를 함께 초대하는 자리였는데, 엄마 한 명 얼굴이 많이 붓고 노랗더라고요. 나중에 알아보니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였어요. 그때 마음이 참 아팠는데,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이 살구여성회의 손을 잡게 할 때까지가 힘들었습니다.

 

급식 봉사 외에 살구평생학교에서도 봉사 활동을 오래 하셨어요.

 

살구평생학교에서 어르신들께 수학 중학교 과정을 가르쳐드리고 있어요. 수학 원리를 가르쳐드리는 게 어렵고, 집중력이 꽤 필요해서 집에 돌아가면 녹초가 된답니다. 1년 정도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가르친 적도 있어요. 그런데 배움에 의지를 갖고 찾아오신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아직 절실함이 없어서인지 따라오는 속도가 더디더라고요.

참 좋았다고 단언할 수 있던 20년 세월

 

김옥자 선생님께서 살구여성회에서 봉사한 시간이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의 삶에 있어 살구여성회 활동은 어떤 의미인가요?

 

살구여성회 활동은 단순히 좋다는 표현 외에 다른 말은 잘 모르겠습니다. 살구여성회와 함께한 20년을 떠올리면 , 참 좋다, 참 좋았다.’ 그런 생각뿐이거든요. 제게 나눔이나 봉사는 그렇게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에요.

 

굳이 특별한 의미를 찾는다면 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준 것을 꼽을 수 있겠네요. 제가 앞장서서 살구여성회 활동을 하다 보니 아이들 역시 자연스럽게 나눔과 봉사활동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아이들은 지금도 어려운 사람을 보거나, 어려운 이웃의 사연을 들으면 관심이 남달라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고 실천도 빠르죠. 살구여성회 활동이 자녀들에게 나눔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가르친 계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살구여성회 활동을 통해 느낀 점 혹은 앞으로 바라는 점을 여쭤볼게요.

 

지역 여성을 위한 민간단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이었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임했는데 노력한 데 비해 덜 알려져서 아쉬운 면도 다소 있습니다.

 

과거 금천구가 서울에서 비교적 낙후된 지역이었다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려면 살구여성회 일원 모두에게 추진력과 책임감, 헌신이 절실했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매사에 임했고, 현재 활동가들과 앞으로 살구여성회에 동참하게 될 분들 모두 뜨거운 추진력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