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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휴먼스오브금천-박성숙 살구여성회 활동가 인터뷰

글쓴이 : 마을관리자 작성일 :20-12-09 12:30 조회 : 264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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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된 공간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따뜻한 밥집 박성숙

 

우리는 세상을 빌렸을 뿐이에요.

부모나 자식도 세상이 잠시 내게 빌려준 거죠.

내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고민을 했어요.

 

받은 은혜를 갚고 싶어

 

살구여성회와는 언제부터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우리 딸이 지금 스물한 살인데, 그 애가 유치원 들어갈 때부터 활동했으니까 16년 정도 됐네요.

제가 딸을 낳고 산후풍이 와서 몸이 정말 안 좋았어요. 그런데 막내며느리인 제가 시부모님을 모시게 됐어요. 그때 동네 성당을 다니게 됐는데, 신부님이 주일마다 오시고 독산1동 자매님들도 오시고 그랬어요. 자매님들 보시기에 제가 좀 안돼 보였나 봐요. 새댁이 자기 몸도 안 좋은데, 치매에 풍까지 온 시부모님 모시지, 아기 있지, 그러니까 자매님들이 김치도 가져오시고 맨날 뭐만 있으면 가져오시는 거예요. 그분들께 제가 사랑을 많이 받았죠.

우리는 세상을 빌렸을 뿐이에요. 부모나 자식도 세상이 잠시 내게 빌려준 거죠. 내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갚아야 할까 고민을 했어요. 처음엔 성당에 보답해야 하나 생각도 했는데, ‘아니다. 조금 크게, 금천구 어르신들한테 하자그렇게 마음을 먹었지요.

그래서 구청 사회복지과에 전화를 했어요. ‘제가 어르신들께 나눔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지역에 있는 단체를 소개해주세요하고. 그리고 며칠 지나서 전화가 왔어요. ‘안녕하세요? 살구여성회예요.’ 하는데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 했었죠.

 

왜 꼭 어르신을 돕는 활동을 하겠다고 생각하셨어요?

제가 시부모님을 모시긴 했지만, 밥도 제대로 못 해드렸어요. 그게 항상 마음에 걸린 거예요. 딸한테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아이를 잘 보살피지 못한 것 같아서 보육원 봉사도 같이 했죠. 그래서 평일에는 어르신께 가고, 주말에는 우리 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가 월요일에 보내고 그랬죠.

 

따뜻한 밥집에서 둘째 아이 돌잔치를

 

처음에 어떤 활동부터 하셨어요?

따뜻한 밥집이요. 금천구청이 사거리에 있을 때, 구청 뒤 산부인과 건물 2층에 살구여성회가 있었어요. 그때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부터 동네 어르신들까지 한 100, 120명 됐던 것 같아요. 어르신들에게 식사

대접하는 일을 도왔는데, 진짜 정신없었어요.

우리 둘째 아이 돌잔치도 거기서 했어요. 잔치라야 따뜻한 밥에 미역국, 과일, 반찬 세 가지를 준비했어요. 그래도 어르신들 모시고 그분들 앞에서 우리 아이를 사랑으로 잘 키우겠다고 매니페스토 선언서를 낭독했죠. 우리 아들 건강하게 자라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도 드리고요. 그때 민요 선생님 오셔서 노래도 불러주시고, 같이 봉사하던 선생님이 플루트도 연주해 주셔서 돌잔치가 작은 음악회가 됐어요.

 

밥집 봉사를 하시면서 어려운 일도 감사한 일도 많았을 텐데요.

어제까지 식사 잘하시고 가셨는데, 갑자기 편찮으시다, 돌아가셨다, 그런 소리 들을 때, 힘들죠. 뽀로로 할머니라고 계셨어요. 99세로 연세가 제일 많으셨는데 항상 뽀로로 모자를 쓰고 오셔서 밥 내놓으라고 막 호통을 치세요. 어쨌든 밥집 대장이셨어요. 얼마나 잘 드시는지 한 번은 너무 많이 드셔서 119에 실려 가기도 했어요.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밥집에 얘깃거리가 없어졌어요.

감사한 일이야 많죠. 그래도 아들 잘 큰 게 제일 감사하죠. 어르신들 기도해주신 덕분인지 그냥 잘 자랐어요. 아들한테 두고두고 얘기하거든요. 밥집 어르신들이 너를 위해 기도해주신 덕인 줄 알라고요.

 

돌잔치를 했던 그 아들은 지금 몇 살이에요?

열다섯 살이에요. 하이라이트 중 2에요. 꿈이 파일럿이래요. 사랑스럽기는 한데 공부는 아주 시멘트를 발라놓은 거 같아요. ‘내 소원이 너 공부하는 모습 보는 거다그러면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년부터 열심히 할게이게 벌써 10년이에요. 그러면서 제 탓을 해요. 제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부탁을 잘 못 해서 그렇다고. ‘엄마는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게 해달라고 했어야지, 어떻게 건강하게만 자라게 해달라 그래!’ 그런다니까요.

 

살구여성회 활동이 선생님한테는 어떤 의미일까요?

대리만족? 왜냐면 옛날에 제가 어머님 아버님을 모신다고 했어도 밥도 잘 못 해드렸어요. 그런데 이분들께 따뜻한 밥을 해드리고 있잖아요. 어르신들 맛있게 드시면 어머님, 아버님 드시는 것처럼 그런 대리만족.

 

시민단체들에 대한 지원 필요해

 

오랜 시간 활동하신 입장에서 앞으로 살구여성회가 이랬으면 하는 바람을 말씀해주세요.

안정된 공간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내년이면 살구여성회가 30년이에요. 금천구에서 어린이, 여성, 노인들을 대상으로 그동안 많은 일을 해왔고, 관내 많은 단체 활동가들이 살구를 거쳐 갔어요. 그 정도면 안정도 되고, 어디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하는데, 후원금으로 운영하다 보니 항상 월세에 관리비 걱정을 하고 있어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더해요. 든든한 뭔가가 있어야 봉사자들도 마음 편하게 이 일을 하는데, 맨날 하루살이처럼 계약만기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어요.

구청에서 생활이 어려운 개개인의 복지를 돌보는 것처럼 우리 같은 단체도 지속적으로 성장해갈 수 있게 지원을 해주면 좋겠어요. 단체들이 일어설 수 있게요.

 

살구여성회가 가진 현재의 어려움은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이사회도 소집하고, 함께 머리를 짜내고 있어요.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활동이나 사업도 고민하고 있고, 저는 단체 명칭도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여성뿐 아니라 지역에 관심 있는 모든 분이 함께 할 수 있게 이제 살구회라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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