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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휴먼스오브금천-유인숙 살구여성회 활동가 인터뷰

글쓴이 : 마을관리자 작성일 :20-12-09 11:40 조회 : 268회 댓글 :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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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여성회 30년을 돌아보며...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넉넉하진 않았지만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서로를 위로하며 살았던 따뜻한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꺼이 시간을 내준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쌀이며 반찬을 후원해 주셨던 후원자분들이 있어 살구여성회는 이런 분들의 노력과 정성으로 이어져 왔다고 봅니다. 그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정말 고맙고 감사 했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살구여성회는 초기의 10년인데 너무나 순수했던 시절 그들의 모습을 잊을수 없으며 내 젊은 날을 돌아볼 때 아! 내게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미소 짓게 되는 그런 곳이라 생각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많은 분이 선생님을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했는데 이유가 뭘까요?

살구여성회를 다녀간 사람이 많았지만 제가 1기 회원이다 보니 예전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 추천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책을 내실 때 유인숙씨는 일은 많이 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사진이 없더라.” 하셨는데 제가 하는 일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살구여성회에서 묵묵히 해온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살구여성회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살구여성회와 같이 시작했습니다. 처음 살구여성회 광고 전단지에 여성이 지역사회 주인 되자. ” 라는 말이 맘에 들어 물어물어 찾아 갔는데 현대시장안 미용실건물 지하는 너무나 열악해서 사무실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였고 얼마 못가 문을 닫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태드릴 것은 없고 내가 매일 와서 청소라도 열심히 해 드리면 이분들이 좀 버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도움이 됐으면 해서 부지런히 다녔고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이었네요. 그렇게 시작한 살구여성회에서 처음 맡은 일이 어떤 활동이었나요?

그 당시는 지금의 벽산아파트 자리가 무허가 판자촌 이였고 어려운 이웃도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지역봉사 활동을 하게 됐으며 그러다 보니 밥집도 하게 됐습니다. 그 후 생활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도 많았으나 분리수거 개념이 없던 시절 이라 살구여성회가 앞장서서 일을 해보겠다며 환경에 대한 외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환경과 관련된 일이 많아졌고 언제나 일할 사람은 부족하기 때문에 환경분야 일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공동대표로 선출, 묵직한 책임감의 시절

 

공동대표를 맡았을 때 살구여성회 분위기는 어땠나요?

제가 공동대표를 맡을 때는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습니다. 아무도 회장직을 맡으려 하지 않았는데 외부이사를 영입하고 경제적인 부담은 주지 않는 조건으로 회장을 맡아 달라 해서 일만 하기로 하고 임송자 선생님과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외부이사가 오면 해결 되는 줄 알았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모든 임,직원들의 고민거리는 재정문제가 되었습니다. 재정 이야기만 나오면 회장인 나는 바늘방석이었고 나중에 외부에서 들리는 말이 회장은 뭐하는 사람이냐 능력 없으면 회장을 맡지 말았어야지하는 비난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회장직을 맡았을 당시 재정적으로 많이 어려웠나 봅니다.

모든 게 재정 문제라고 봐야겠지요. 외부 프로젝트를 받아와도 인건비는 포함이 안 된 상태라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 있으면 임원진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모두 도와야 했습니다. 거기다 개인적으로는 밥집운영이 큰 부담 이었지요. 밥집은 보람도 많지만 일도 많고 힘들기도 하는데 그 당시에도 구청에서 약간의 금액이 나오긴 했으나 턱없이 부족해서 후원금이나 후원물품 없이는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열심히 후원을 부탁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시설도 열악해서 식사 후 뒷마무리로 그릇과 수저 등 모든 물품을 삶아야 했는데 가스렌지 위에 큰 들통을 올려놓고 삶으려면 의자를 놓고 올라서도 짧은 팔로 뒤집고 꺼내기가 힘들다 보니 너무 무리를 했던지 팔이 아파서 한동안 숟가락도 못들 정도로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밥집에 애정이 있다 해도 책임만 강조하면서 그나마 후원받던 물품까지 중단 하겠다며 이제는 회장이 알아서 운영해라 할 때는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까지 이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모든 걸 놔버리고 도망치고 싶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밖에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10년은 활동한 거지요?

살구여성회서 이런저런 활동은 만10년 했고요. 그중에서 밥집은 5년 했습니다. 시흥2동 달동네 어르신들과 고물 줍는 할머니들을 많이 만나면서 제대로 된 주방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밥집을 하기로 하고 그릇이며 수저 젓가락 등 각 가정에서 안 쓰는 물품들을 기증받아 사용하다 보니 젓가락도 가지가지라서 짝을 맞춰 놓는데도 시간이 걸리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리 돈이 없어도 젓가락은 같은 걸로 사서 사용했더라면 일하기가 조금은 편했을 텐데 참 융통성 없이 순진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활동하셨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공동대표로서 좀 더 잘하지 못한 점도 아쉽고 무엇보다 기초의원을 한명쯤 배출했더라면 살구여성회 활동 방향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 당시 한국여성사회 교육원에서는 지역 단체에서 여성후보를 내는 문제로 여러 차례 강의도 했었고 임원들 개개인을 설득도 했지만 모두들 요지부동 이였습니다. 그 후에 비례대표 제안이 들어 왔으나 역시나 모든 임원이 거절 했었고 회장이란 이유로 저를 추천하려 했으나 거절했던 것이 개인적으로 후회는 없지만 조직에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미안하고 아쉬운 점입니다. 또 하나는 초기 임원들과의 단절입니다. 아무런 대가없이 순수한 봉사정신으로 활동 하셨던 아까운 분들을 끌어안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렵다보니 본의 아니게 너무 심적 부담을 줬던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부담 없이 재능기부만 하라고 했으면 지금까지도 열심히 하셨을 거고 살구여성회에 보이지 않는 큰 자산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분들을 놓친 것이 참 많이 아쉬운 점입니다.

 

공동대표를 그만두고 살구여성회 활동을 안 하는 건지요?

너무 지친 상태로 그만 뒀기 때문에 다시 참여 한다는 게 겁이 났었고 그사이 사람들도 바뀌어서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운영의 어려움을 알기에 작은 마음에 표시라도 하고 싶어 매년 조금씩 후원금을 보내다가 작년부터 그만 뒀습니다.

 

살구에서 완성한 제 2의 인생

 

살구여성회가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 합니다. 예전에는 학교를 다니지 못한 열등감과 배움의 목마름으로 원망과 불만이 많았었지만, 살구여성회를 와서 보니 30대 인데도 한글을 몰라 불편함과 서러움에 펑펑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A.B.C도 몰라서 상표를 거꾸로 붙이는 바람에 직장에서 야단을 맞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달동네 쪽방에서 어렵게 사는 이웃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도 감사할 줄 몰랐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으며 그때부터 매사에 감사하며 작지만 꼭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회장직을 그만두고 방통대를 갔는지요?

제 나이 마흔다섯이 됐을 때 지치기도 하고 여기서 일을 계속하다가는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만두려 했지만 무료급식을 맡을 후임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야간 검정고시 반을 다녔으며 그 후 방통대 입학 후 2학년 되던 해 새로운 회장이 선출되고 살구여성회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살구여성회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 합니다.

순수했던 시절 10년을 열정으로 활동했던 곳이라 잊을 수 없는 곳이고 보람도 아픔도 많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키우는 성장 통 이었다 생각 합니다.

 

살구여성회가 곧 30주년을 맞이 합니다. 마지막으로 살구여성회가 지여사회에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는 들어보고 싶습니다.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로 오랫동안 남았으면 하는 바램 이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르신들 무료급식이랑 주부대상 공부는 여러 곳에서 하고 있고 예전처럼 절박함도 덜 한 것 같아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활동 방향도 달라져야 된다는 생각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라 전문가와 더불어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살구여성회에서 보낸 10년은 유인숙 선생님에게 젊은 날을 돌이켜 보고 자신도 몰랐던 열정을 확인할 수 있게 한 기준점이었다. 이제는 선대 회장으로서 자신의 젊은 날과 닮은 활동가들의 어깨를 다독다독 두드리며 살구여성회에 대한 힘찬 응원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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